무라카미 하루키, 장수 고양이의 비밀

 

 

모든 게 귀찮은,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 고양이 루시우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인 장수 고양이의 비밀 북리뷰를 들고 왔습니다.

루시우의 분홍발바닥은 여전히 분홍분홍하고, 의자 뒤 실내자전거도 변함없이 수건걸이로서의 역할을 잘해 주고 있는 게 보입니다.

 

 

 

 

 

이것은 결코 설정샷이 아닙니다.

그저 집사는 아무 연필이나 들고 책을 읽다가, 읽던 페이지에 아무렇게나 끼워둔 채 책상 위에 올려놓았을 뿐인데

(저 연필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사고 받은 겁니다)

뭔가 무라카미 빠순이 같은 느낌을 주는 광경이 등장해버렸습니다. 심지어 이름까지 정면을 보고 있어.

 

 

 

 

 

..광팬인 건 사실이지만요. 집사 책꽂이의 무라카미 코너.

 

 

 

 

 

“이 책에는 1995년 11월부터 일 년 한 달 동안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았습니다.” – 334p

예, 물론 고양이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별 이야기가 다 있어요. 학창시절의 체벌에 대해서라든가

공중부양하는 꿈, 나체로 집안일하는 것에 대한 독자 이야기 공모, 작가의 취미인 달리기 주제도 빠질 수 없겠고

번역과 사전, 자신의 번역 경험이라든가 특이한 러브호텔 이름에 대해서까지.

아무래도 짧게 한 편씩 연재했던 에세이 모음이다 보니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미국 신문에도 인생 상담 코너가 있어서 제법 열심히 읽었다. 덕분에 사 년 반 거주하며 일반적인 미국인이 가진 고민에 꽤 정통해진 기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에는 수많은 고민이 넘쳐나는데, 그 내용은 미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인간의 고민이란 거기서 거기구나’ 싶을 때는 별로 없고, ‘그렇군, 나라가 다르면 고민거리도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훨씬 많았다. 고민 내용만이 아니다. 답변의 패턴도 많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는 알 듯 말 듯한 정서적 답변, 혹은 윗사람의 훈계 같은 따분한 답변을 자주 보는데(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바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하, 과연, 이런 방법이 있었네’ 하고 무릎을 치고 싶어지는 효과적인 답이 많았다. ‘모호한 일본식 답변’에 미국 독자들은 전혀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논리적이고 명쾌한 결론이 있어야 한다. – 57p, ‘벌거벗고 집안일하는 주부는 옳은가?’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번역을 내 ‘취미’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번역서를 내왔고(대부분이 미국 현대소설이다), 번역은 이미 내 직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순 풋내기 실력으로 시작한 터라 지금 다시 읽어보면 식은땀이 흐르는 대목이 많아서 당당히 외칠 수는 없지만, 대외적으로는 변변찮으나마 번역가로 통한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여전히 ‘번역은 취미다’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어찌됐건 틈이 나면 훌쩍 책상 앞에 앉아 ‘우발적’으로 번역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딱히 생계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가 청탁해서도 아니다.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도 아니고, 공부를 위해서도 아니다 – 결과적으로 귀중한 공부가 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이다. 확언하건대 나는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이렇게 물리지도 않고 장장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걸 취미가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 – 63p, ‘취미로서의 번역’

 

 

하지만 출산하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 시간씩 마주하고 있던 그때, 나와 그애 사이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어떤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고, 그것을 우리가 공유한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니 인간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뭇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 세상의 멋진 고양이가 대개 그렇듯이 – 뮤즈도 마지막까지 평소에는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가족으로 사이좋게 같이 살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었다.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특히 이 고양이는 머리가 좋은 만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면이 컸다. 그래도 새끼를 낳을 때만은 자신의 전부를, 말린 전갱이 구이처럼, 유보 없이 내게 맡겼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 조명탄이 올라가듯이 그 고양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이 있고, 괴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출산이 끝나면 뮤즈는 다시 원래의 수수께끼 가득한 쿨한 고양이로 돌아갔다. 고양이란 좀 이상한 동물이죠. – 140p, ‘장수 고양이의 비밀: 출산 편’

 

 

다만 절대 꼬투리 잡는 건 아닌데, 일본의 사전은 대체로 경쟁사의 속셈을 흘끔거리면서 ‘저쪽이 넣는다면 우리도 넣어야지’ 하는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는 결국 단점까지 닮은꼴인 사전만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좀 재미 없다. 사전이란 것에는 어느 정도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꿋꿋한 구석이 있으면 좋겠다. 서로 눈치를 보기보다 의외성과 독자성이 있는 예문을 넣어주면 좋겠다. 이를테면 (어디까지나 예지만) might as well의 예문은 어느 사전이건 거의 판박이 같단 말이죠. – 317p

 

 

 

집사도 번역가입니다만, 그래서인지 사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부분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양이에 대해서도 물론 마찬가지.

좋아하는 작가가 세상의 다양한 면을 관찰하는 방식이라든가,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굉장히 궁금해하는 독자니까겠지요.

만약 무라카미 하루키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든가 ‘그게 누군데?’라는 분이라면, ‘별 내용 없잖아’ 싶은 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Q84는 걸작이다’, ‘요즘 외로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알종알 해 주는 책을 읽고 싶어’라는 분에게는 추천.

 

 

 

 

 

그럼 여러분, 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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